8하지만 상욱은 아무래도 기분이 개운치를 않았다. 이번만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한민이 얼마나 섬을 나가고 싶어했는가를, 그리고 그러한 소망이 얼마나 무참스런 배반감 속에서 허무하게 스러져 가버렸는가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보다도 상욱에겐 먼저 그 한만의 죽음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일이 있었다. 상욱은 언젠가 그 한민에게 그가 알고 있는 한 섬 소년의 탈출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귀띔해 준 일이 었었다. 한은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몹시도 좋아했다. 섬에 관해선 이런전런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소년에 관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라면서 눈빛을 마구 빛내고 있었다. 한은 마마 그 후로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만있어여, 내 이과장님을 깜짝 놀라게 해줄테니. 그 녀석 이야기는 정말로 좋은 글이 될 거예요.소록도의 환자들에겐 낙원이 없었다.황장로는 언제나처럼 원자의 말에는 그리 별다른 느낌이 없는 사람처럼 그저 망연스런 눈초리만 하고 있었다. 망연스런 눈초리로 한동안이나 그저 먼 바다만 내려다보고 있던 황장로의 눈길이 이윽고 오마도 기슭을 오르내리는 흙차들 쪽으로 옮겨졌다가 그것이 다시 곁에 선 조원장에게로 되돌아왔을 때, 노인의 눈가에는 뜻밖에도 어떤 짓궂은 장난기 같은 것이 배고 있었다.어느 해 총선 땐가 한 유능한 인사가 바로 이 섬 병원의 그런 이점에 착안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선거기가 다가오자 이 섬 주민들이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케 하는 데에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바쳤다. 그리고 그는 그 총선 투표에서 모처럼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러 나온 원생들로부터 그의 노력과 정성에 값할 만큼 충분한 보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그런데 그 기사가 결국 이형에겐 난처한 숙제를 남겼다는 것이겠구만?그는 이날 하필 이상스럽게 몸이 불편해서 동상 참배를 슬그머니 빠지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괴괴하게 가라앉은 다음 그는 자기 집 아랫목에 누워 편안히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몸이 조금 불편하다해서
느닷없이 주정수 원장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비식비식 다시 장난스런 웃음기를 머금기 시작하고 있는 원장의 태도로 보아 그 자신의 부탁이라는 건 아무래도 금세 말을 할 것 같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새 원장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 주정수 시절의 병원사정에 대해서도 꽤나 세심한 지식을 얻어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아직도 결말을 못 내고 계십니까.”조원자의 처지로선 당장 그 이상의 대비책이 있을 수 없었다.바깥에서 되어가고 있는 사정에다 원장이 일부러 그런 자극적인 소리를 덧붙인 것은 물론 섬사람들에게서 배전의 작업열을 발휘시키고 그것을 다짐받기 위함이었다.자동차가 마침 병원 본부 앞까지 올라와 있었다.거룩한 신의 섭리여!“아, 그거 말요? 이젠 상관없어요. 그보다도”암흑과 먹구름도 이제 개이고노인 역시 상욱을 알고 있었다. 노인은 상욱이 때로 무엇 때문에 자기를 찾아와서 그 무참한 배반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다 가는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이건 살인이야! 동료를 때려죽이는 백정 놈의 짓이야. 누구한테 무슨 목숨값을 해준다는 게야.”이제 그 환자와 인간의 구분을 통해 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의 모순을 좀더 자세히 설명드릴 때가 온 것 같습니다.올해 예순이 넘은 중앙리 장로였다. 섬 암 5천여 원생 가운데 그 나름대로 한 맺힌 내력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섬의 비극은 이미 이 곳을 찾아와 살다 죽어갔거나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에나 맞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도 이 황희백 노인에겐 남달리 또 엄청난 내력들이 숨겨져 있었다. 병을 얻고 섬에 들어와서 그가 오늘날까지 겪은 일들에는 유난히도 끔찍스런 사연들이 많았다. 전설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 섬의 슬픈 역사의 표상이었다. 살아있는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의연하게 눈을 감고 시련을 감내하면서 언젠가 그 모든 시련이 끝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그 황희백 노인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